얼마 전에 이런저런일 때분에 '반딧불의 묘'를 봤습니다. 사실 잔인한 장면이 나올 것으로 예상해서 안보고 일부러 미뤄뒀던 것인데.... 저는 어렸을 때 큰 자동차 사고에 두차례나 휘말렸습니다. 단편적인 기억밖에 없는 그때 일이 큰 트라우마가 됐는지 그후로는 심한 상처나 출혈을 보면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정말로 눈앞에 깜깜해지며 쓰러질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반딧불의 묘 중간에 세이타 어머니가 심각한 화상을 입을 장면을 보고는 재생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을 고생했습니다. 밤에 잠을 자는데 계속 악몽이 계속됐습니다. 겨우겨우 악몽을 수습하고는 나머지를 겨우 봤습니다. 한번 봤던 영화나 문학작품은 한차례 더 보는 것이 습관인데, 이번에는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전범국 일본의 피해자화로 한참 논란이 됐던 작품입니다. 세이타나 세츠코가 해군 장교의 자녀인 것을 생각해보면 일본인인 감독의 입장에서는 나름 선을 긋기 위해서 노력한 구석이 보입니다. 공습에 의해서 공장이 파괴 됐다거나 주변인들이 전시 근로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소이탄 폭격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 참조 : https://www.google.co.kr/search?q=총력전+민간인 ) 단순히 이들이 무고하게 죽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다면 전쟁에 최대한 연루되지 않은 인물이 비참하게 죽는 모습을 그렸을 것입니다. 세이타나 세츠코가 아버지가 전쟁에 연루되어 있는 해군 장교인 덕에 전시에도 풍족하게 살기도 했고, 근로 동원에 반발하는 모습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제국주의에 순응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느정도 거리를 두려고 시도하고 있긴 합니다.
문제는 이 작품에는 청자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에 따라서는 열불이 날만한 요소가 가득하다는 점입니다. 세이타나 세츠코가 친척 아주머니의 박대에 못이겨 살게 되는 곳이 버려진 방공호입니다. 방공호에서의 삶을 보면 전쟁 이전 부모의 삶을 모사하고 있습니다. 세이타는 군가를 부르며 관함식에서 봤던 장면을 자랑하고, 세츠코는 바느질이나 밥 짓는 흉내를 냅니다. 아마도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싶은 의도겠지만, 저 아이들이 흉내내고 있는 것은 전쟁 이전의 행복한 가족의 삶, 다시 말해서 2차대전 이전의 일본 제국을 상징합니다. 결국 아이들은 비참하게 죽게 되지만 원인은 아이들의 잘못 보다는 전쟁이나 민족, 국가, 마을과 같은 외부의 야만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종합하면 세츠코와 세이타는 전쟁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착한 아이들이 불쌍하게 죽었으니 희생자라는 주장입니다. 이 말을 조금 더 확장하면 일본인들은 전쟁에 관련이 있긴 하지만 불쌍하게 희생당했다는 것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비참한 죽음을 비극적으로 묘사하고 이를 희생자화 한 것으로 끝났다면 그래도 수긍하겠는데 그리고는 남들을 신나게 털어먹던 화려하고 잘나갔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리워 합니다.
세츠코가 죽기전 세이타는 아버지의 전사 사실을 알고 절망합니다. 아마도 세이타의 아버지가 전사하지 않았다면 세이타와 세츠코는 살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전쟁으로 인한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세이타의 아버지는 전쟁 이전의 강한 아버지, 군국주의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악몽으로 남아 있어야 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반대로 잘 나가고 화려한 시절로 둔갑시키고, 전쟁이 비극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자랑스럽고 행복하고 시절을 끝장낸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만들 위험성이 다분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일본을 공격하는 연합국은 B29폭격기와 소이탄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다시 볼 엄두가 안나서 확인 못했습니다.) 이제 작품의 모습은 닿을 수 없는 하늘에 있는 마치 천재지변과 같은 비인간적인 기계와 무서운 무기에 희생당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 그러니까 인간성을 파괴한 것은 공포스러운 기계이고 파괴된 삶은 회복되어 합니다. 그렇다면 세이타와 세츠코가 회복하려고 하는 것은 방공호에서 꿈구는 과거의 삶, 바로 군국주의의 달콤한 열매입니다.
그리고 작품은 세이타와 세츠코가 재건에 성공한 현대 일본 대도시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세이타와 세츠코는 죽은 후에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떠나 보내는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뜻하게 되는데, 아직도 도시 근처에서 방황하는 것은 심지어 전후 일본 재건을 성공한 후에도 과거의 화려한 시절에 집착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작품 자체를 봤을 때는 참 전쟁은 비참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 내내 무엇인가 애매하고 교묘하게 뒤틀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전쟁에 대해서 반성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교묘하고 무의식적인 방어기제가 보여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2014-06-04
2013-07-08
정말 재미있게 본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IPTV에 '인류는 쇠퇴했습니다.'라는 애니메이션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제목을 보고는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사건으로 문명이 황혼을 맞이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인류의 처절한 사투와 여러가지 메시지들이 담겨있는 작품이라니!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대감에 부풀어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화면에서 저를 반겨준 것은 동화풍의 그림이었습니다. 작고 귀여운 요정이 등장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색감은 아동용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었습니다.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그림체를 보고는 대충은 뭔가 베베 꼬인 작품이라고 직감하긴 했지만...
생닭이 지성을 얻어서 공장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으로 시작해서 정신 나간 듯한 동화같은 에피소드가 계속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자 술자는 '나'인데 자신이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식량난을 겪거나 섬에 고립되고, 복잡한 폐허에서 길을 잃고, 만화 속에 갇히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작품에서는 '페어리'라는 단위를 등장시키긴 하지만, 이것만 믿기에는 뭔가 위험한 구석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차분하게 전개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중심축은 인류 쇠퇴기에 대한 서술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에 대한 비판입니다. 사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비판들은 지겨울 정도로 듣는 내용들입니다. 여러 명작의 교훈은 결국 지루하기 딱 좋은 내용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제 표현과 사건 전개의 방식인데 작품은 동화적인 배경과 캐릭터, 그리고 요정을 선택하고는 주인공인 '나'의 미묘하게 냉소적인 독특한 시각으로 사건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전개인데도 독특한 서술 덕분에 무척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인류의 멸망 원인입니다. 하지만 몇가지 힌트로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원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위급한 상황에서 '나'의 이야기 전개는 상당히 부조리합니다. 심지어 인류가 쇠퇴하는 상황인데도 사람들은 담담히 이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의 설명에 의하면 갑작스럽게 쇠퇴한 것이 아닌 오랜 기간을 두고 쇠퇴한 것으로 보입니다. 식량 부족에 대한 언급이 있기도 했고, 과도한 자원 소모로 폐쇄 생태계가 붕괴하고 결국은 문명이 붕괴하는 에피소드(아마도 이스터섬의 이야기가 모티브였던 것 같습니다. 참조 : http://mirror.enha.kr/wiki/%EC%9D%B4%EC%8A%A4%ED%84%B0%20%EC%84%AC )가 있긴 했지만 작품속의 문명이 자원 부족으로 쇠퇴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전개 방식 때문에 과장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지만, 오히려 작품 속 쇠퇴기의 인류가 현대 인류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류 모뉴먼트 계획에 대해서 작품 속의 인물들이 별다른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은, 과거의 기술이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도 부족함이 없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급격한 재해나 전쟁으로 쇠퇴하고 있다고 보기 힘든 점이, 과거의 대부분의 건축물에서 폭발이나 화재, 진동, 수몰 같은 재해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파괴된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구가 감소하고 관리가 힘들어지면서 붕괴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 인구 감소는 기술 쇠퇴와 생산력 감소로 이어지는 듯한 인상입니다. 어떤 원인으로 인구가 감소했다고 하더라도 원인이 사라지면 다시 증가세에 들어서야 정상입니다. ( 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0306/h2003061018385822180.htm ) 하지만, 여전히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구 감소의 원인이 작품 속 시점에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생존하는데 필요한 물자의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면,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풍요가 인류 쇠퇴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 실제로 선진국일수록 출산률은 감소하고, 평균 연령은 증가한다고 합니다. 참조 : http://mirror.enha.kr/wiki/%EC%B6%9C%EC%82%B0%EC%9C%A8 ) 그리고 전쟁의 원인은 물자의 부족인데, 전쟁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인류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과 만화속의 세상의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차이점은 요정의 존재입니다. 인류의 쇠퇴 원인이 요정의 등장 원인과 겹치거나, 요정 자체가 인류의 쇠퇴 원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1화에서와 비슷한 수단으로 인류의 삶에 어떤 식으로 관여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글에서 중요한 부분은 작품의 주제를 담아내는 독특한 서술방식과 이에 따른 재미인데, 다른 이야기가 오히려 더 길어졌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은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리고 화면에서 저를 반겨준 것은 동화풍의 그림이었습니다. 작고 귀여운 요정이 등장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색감은 아동용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었습니다.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그림체를 보고는 대충은 뭔가 베베 꼬인 작품이라고 직감하긴 했지만...
생닭이 지성을 얻어서 공장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으로 시작해서 정신 나간 듯한 동화같은 에피소드가 계속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자 술자는 '나'인데 자신이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식량난을 겪거나 섬에 고립되고, 복잡한 폐허에서 길을 잃고, 만화 속에 갇히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작품에서는 '페어리'라는 단위를 등장시키긴 하지만, 이것만 믿기에는 뭔가 위험한 구석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차분하게 전개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중심축은 인류 쇠퇴기에 대한 서술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에 대한 비판입니다. 사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비판들은 지겨울 정도로 듣는 내용들입니다. 여러 명작의 교훈은 결국 지루하기 딱 좋은 내용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제 표현과 사건 전개의 방식인데 작품은 동화적인 배경과 캐릭터, 그리고 요정을 선택하고는 주인공인 '나'의 미묘하게 냉소적인 독특한 시각으로 사건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전개인데도 독특한 서술 덕분에 무척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인류의 멸망 원인입니다. 하지만 몇가지 힌트로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원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위급한 상황에서 '나'의 이야기 전개는 상당히 부조리합니다. 심지어 인류가 쇠퇴하는 상황인데도 사람들은 담담히 이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의 설명에 의하면 갑작스럽게 쇠퇴한 것이 아닌 오랜 기간을 두고 쇠퇴한 것으로 보입니다. 식량 부족에 대한 언급이 있기도 했고, 과도한 자원 소모로 폐쇄 생태계가 붕괴하고 결국은 문명이 붕괴하는 에피소드(아마도 이스터섬의 이야기가 모티브였던 것 같습니다. 참조 : http://mirror.enha.kr/wiki/%EC%9D%B4%EC%8A%A4%ED%84%B0%20%EC%84%AC )가 있긴 했지만 작품속의 문명이 자원 부족으로 쇠퇴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전개 방식 때문에 과장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지만, 오히려 작품 속 쇠퇴기의 인류가 현대 인류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류 모뉴먼트 계획에 대해서 작품 속의 인물들이 별다른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은, 과거의 기술이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도 부족함이 없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급격한 재해나 전쟁으로 쇠퇴하고 있다고 보기 힘든 점이, 과거의 대부분의 건축물에서 폭발이나 화재, 진동, 수몰 같은 재해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파괴된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구가 감소하고 관리가 힘들어지면서 붕괴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 인구 감소는 기술 쇠퇴와 생산력 감소로 이어지는 듯한 인상입니다. 어떤 원인으로 인구가 감소했다고 하더라도 원인이 사라지면 다시 증가세에 들어서야 정상입니다. ( 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0306/h2003061018385822180.htm ) 하지만, 여전히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구 감소의 원인이 작품 속 시점에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생존하는데 필요한 물자의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면,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풍요가 인류 쇠퇴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 실제로 선진국일수록 출산률은 감소하고, 평균 연령은 증가한다고 합니다. 참조 : http://mirror.enha.kr/wiki/%EC%B6%9C%EC%82%B0%EC%9C%A8 ) 그리고 전쟁의 원인은 물자의 부족인데, 전쟁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인류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과 만화속의 세상의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차이점은 요정의 존재입니다. 인류의 쇠퇴 원인이 요정의 등장 원인과 겹치거나, 요정 자체가 인류의 쇠퇴 원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1화에서와 비슷한 수단으로 인류의 삶에 어떤 식으로 관여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글에서 중요한 부분은 작품의 주제를 담아내는 독특한 서술방식과 이에 따른 재미인데, 다른 이야기가 오히려 더 길어졌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은 오랜만이었습니다.
2012-08-26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를 봤습니다.
이 작품은 IPTV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IPTV에서 볼 시리즈물 애니메이션을 선택할 때는 첫화와 마지막화 일부를 보고 선택하곤 하는데, 처음에는 특정 계층을 노린 전형적인 작품으로 생각했습니다. 최근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 상당수가 캐릭터성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한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 역시 비슷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이작품에 대한 인터넷의 평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나 '바케모노가타리', '니세모노가타리'등을 인터넷의 호평만으로 접했다가, 크게 실망한 적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전 디아블로3를 하다가 게임 진행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서 갑작스럽게 짜증이 몰려왔습니다. 여기저기 살펴보니 이 작품이 있었습니다. 결국 궁금증을 결국 이기지 못하고 재생해봤습니다.
어느정도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에는 그럭저럭 보고 있었는데, 점점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스토리는 전반적으로 잔잔하고 슬픈 내용입니다. 여기에 각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가 합쳐져서 전달력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사건 이후에 초평화버스터즈는 흩어지고 각 인물들은 표류하게 됩니다. 각각 트라우마를 지닌채 그날로부터 벗어나게 위해서 애쓰지만 결국은 제자리입니다. 그리고는 야도미 진타에게만 혼마 메이코가 나타나고, 혼마 메이코가 성불할 때가지 각 인물들의 내면의 심리와 이것의 변화를 정말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슬프면서도 애잔한 스토리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특성과 이 작품 특유의 표현이 잘 어우러져서 흡입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입니다. 제 여동생의 한마디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숨바꼭질이 이렇게 슬픈 놀이인지 몰랐다."
한동안 이작품에 대한 인터넷의 평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나 '바케모노가타리', '니세모노가타리'등을 인터넷의 호평만으로 접했다가, 크게 실망한 적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전 디아블로3를 하다가 게임 진행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서 갑작스럽게 짜증이 몰려왔습니다. 여기저기 살펴보니 이 작품이 있었습니다. 결국 궁금증을 결국 이기지 못하고 재생해봤습니다.
어느정도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에는 그럭저럭 보고 있었는데, 점점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스토리는 전반적으로 잔잔하고 슬픈 내용입니다. 여기에 각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가 합쳐져서 전달력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사건 이후에 초평화버스터즈는 흩어지고 각 인물들은 표류하게 됩니다. 각각 트라우마를 지닌채 그날로부터 벗어나게 위해서 애쓰지만 결국은 제자리입니다. 그리고는 야도미 진타에게만 혼마 메이코가 나타나고, 혼마 메이코가 성불할 때가지 각 인물들의 내면의 심리와 이것의 변화를 정말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슬프면서도 애잔한 스토리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특성과 이 작품 특유의 표현이 잘 어우러져서 흡입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입니다. 제 여동생의 한마디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숨바꼭질이 이렇게 슬픈 놀이인지 몰랐다."
2011-09-24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를 봤습니다.
얼마전 인터넷을 보니 이 작품에 대한 글을 종종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다가 기회가 있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KT의 IPTV에 진작에 올라와 있었지만, 제목부터가 뭔가 끌리지 않아서 미루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게으르니즘과 귀차니즘을 배반하기 힘들었습니다.
며칠전 한번 보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얼마전 즐겨하던 게임의 캐릭터와 색상과 여주인공 '키리노'의 색상이 비슷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동안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고, 지금도 비슷하게 보이지가 않는데 갑자기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저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꽤 인기가 있었던 애니메이션 같은데 솔직히 저는 어디에 촛점을 맞춰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작품의 여동생이라는 주제부터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여동생과 친한 편이고, 제 여동생을 보고는 충분히 '귀엽다'라는 인상을 자주 받기는 하지만, 분명 이 애니메이션에 그려진 모습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습니다.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분명 인터넷만 검색해봐도 인기있는 작품입니다.), 저에게는 우선 주요한 테제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결국 남은 것은 곳곳의 개그코드 밖에 없었습니다.
곳곳의 개그코드중에는 재미있는 곳도 있었지만, 어쨋든 주요한 맥을 따라가지 못하니 약간의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는 다른 매체에서 표현할 수 없는 세계까지 묘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분명 영화나 TV드라마를 통해서 보면 한없이 유치한 것들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창을 통하면 굉장히 멋질 때가 있습니다. 또한 사진이나 글이 아닌 그림이 매개체가 되어야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천공의 섬 라퓨타'가 영화로 나왔다면, 유치한 아동용 작품으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애니메이션이 현실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현실과의 접촉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이것은 과학이론이나, 시대 분위기, 심지어 사람들이 상상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될수도 있습니다.
어떤 음악작품이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신나고 즐거운 명작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결정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을테고,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을 환경이라고 한다면, 제가 있는 환경과 정신내의 여동생 이미지가 '내 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의 것과는 지나치게 이질적인가 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제가 보기에는 재미가 정말 없었습니다.
며칠전 한번 보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얼마전 즐겨하던 게임의 캐릭터와 색상과 여주인공 '키리노'의 색상이 비슷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동안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고, 지금도 비슷하게 보이지가 않는데 갑자기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저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꽤 인기가 있었던 애니메이션 같은데 솔직히 저는 어디에 촛점을 맞춰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작품의 여동생이라는 주제부터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여동생과 친한 편이고, 제 여동생을 보고는 충분히 '귀엽다'라는 인상을 자주 받기는 하지만, 분명 이 애니메이션에 그려진 모습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습니다.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분명 인터넷만 검색해봐도 인기있는 작품입니다.), 저에게는 우선 주요한 테제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결국 남은 것은 곳곳의 개그코드 밖에 없었습니다.
곳곳의 개그코드중에는 재미있는 곳도 있었지만, 어쨋든 주요한 맥을 따라가지 못하니 약간의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는 다른 매체에서 표현할 수 없는 세계까지 묘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분명 영화나 TV드라마를 통해서 보면 한없이 유치한 것들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창을 통하면 굉장히 멋질 때가 있습니다. 또한 사진이나 글이 아닌 그림이 매개체가 되어야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천공의 섬 라퓨타'가 영화로 나왔다면, 유치한 아동용 작품으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애니메이션이 현실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현실과의 접촉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이것은 과학이론이나, 시대 분위기, 심지어 사람들이 상상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될수도 있습니다.
어떤 음악작품이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신나고 즐거운 명작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결정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을테고,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을 환경이라고 한다면, 제가 있는 환경과 정신내의 여동생 이미지가 '내 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의 것과는 지나치게 이질적인가 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제가 보기에는 재미가 정말 없었습니다.
2010-10-03
xxxHOLiC을 봤습니다.
시내버스를 타는 중 무료함에 DMB를 실행시켰습니다. 처음에는 NGC의 다큐멘터리를 보려고 했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아니라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습니다. 뭔가 독특한 분위기의 만화영화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잠시 봤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편성표를 찾아보니 xxxHOLiC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결국 1기 1화부터 2기 마지막화까지 보고 말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 구조나 등장인물, 복장이 상당히 일본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습니다. 우선은 바탕부터가 클램프 특유의 세계관에 일본에 전승되어 내려오던 설화나 민담을 가미한 것으로 보입니다. 좌부동이나 우여랑 같은 인물부터가 일본 민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참조 : http://flansnest.egloos.com/1358543)
바로 이 이미지의 인물이 좌부동입니다. 잡설을 더하자면 동(童)이라는 한자가 아이를 뜻하는데(참조 : http://hanja.naver.com/search?query=%E7%AB%A5) 아이가 좀 많이 큰 듯한 느낌이 들긴 하네요. 그리고 동일한 악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연히 기회가 되서 비슷한 악기의 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제가 듣기로는 대금에 칠판 긁는 소리를 입혔다는 느낌이... 그런데 실제 작품에서 보면 꽤 멋집니다. 포장을 잘 했다는 생각밖에는...
그림체가 상당히 독특한 편입니다. 신체비율이 흔히 말하는 순정만화의 그림과 비슷한데 느낌은 많이 다릅니다. 영상이 요즘 만화치고는 멋진 편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도라든지 색상, 분위기는 괜찮은 편이고, 제가 처음 이 만화영화가 무엇인지 알아보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다른 클램프의 작품들과 접점을 가지는 부분이 많다고는 하는데, 제가 본 것이 얼마 없기도 하고 전반적인 스토리를 파악하는데 크게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스토리 단위마다 큰 연계성이 없으니 부담 가지지 않고 감상할 수 있지만, 이런 장르에서 종종 등장하는 복선은 유의해야 합니다. 스토리가 여러가지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니 작은 소품도 유의해서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립십자학원(私立十字學園)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1기 10화에서 shi는 죽음을 뜻한다고 합니다.(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니 일본어도 四와 死의 음독이 같네요..) 그리고 유코가 와타누키가 겪은 일을 해석하면서 길이 네개 모인 사거리 또한 비슷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十역시 사거리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와타누키가 큰 부상을 입는 곳이 사립십자학원입니다.
요즘 본 만화영화가 몇편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최근 일본만화는 캐릭터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저 또한 선호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 역시 이러한 경향을 완벽하게 피해갔다고 보기는 힘들겠지만 나름 독특한 전개방식이나 스토리 때문에 마지막화까지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편성표를 찾아보니 xxxHOLiC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결국 1기 1화부터 2기 마지막화까지 보고 말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 구조나 등장인물, 복장이 상당히 일본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습니다. 우선은 바탕부터가 클램프 특유의 세계관에 일본에 전승되어 내려오던 설화나 민담을 가미한 것으로 보입니다. 좌부동이나 우여랑 같은 인물부터가 일본 민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참조 : http://flansnest.egloos.com/1358543)
바로 이 이미지의 인물이 좌부동입니다. 잡설을 더하자면 동(童)이라는 한자가 아이를 뜻하는데(참조 : http://hanja.naver.com/search?query=%E7%AB%A5) 아이가 좀 많이 큰 듯한 느낌이 들긴 하네요. 그리고 동일한 악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연히 기회가 되서 비슷한 악기의 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제가 듣기로는 대금에 칠판 긁는 소리를 입혔다는 느낌이... 그런데 실제 작품에서 보면 꽤 멋집니다. 포장을 잘 했다는 생각밖에는...
그림체가 상당히 독특한 편입니다. 신체비율이 흔히 말하는 순정만화의 그림과 비슷한데 느낌은 많이 다릅니다. 영상이 요즘 만화치고는 멋진 편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도라든지 색상, 분위기는 괜찮은 편이고, 제가 처음 이 만화영화가 무엇인지 알아보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다른 클램프의 작품들과 접점을 가지는 부분이 많다고는 하는데, 제가 본 것이 얼마 없기도 하고 전반적인 스토리를 파악하는데 크게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스토리 단위마다 큰 연계성이 없으니 부담 가지지 않고 감상할 수 있지만, 이런 장르에서 종종 등장하는 복선은 유의해야 합니다. 스토리가 여러가지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니 작은 소품도 유의해서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립십자학원(私立十字學園)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1기 10화에서 shi는 죽음을 뜻한다고 합니다.(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니 일본어도 四와 死의 음독이 같네요..) 그리고 유코가 와타누키가 겪은 일을 해석하면서 길이 네개 모인 사거리 또한 비슷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十역시 사거리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와타누키가 큰 부상을 입는 곳이 사립십자학원입니다.
요즘 본 만화영화가 몇편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최근 일본만화는 캐릭터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저 또한 선호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 역시 이러한 경향을 완벽하게 피해갔다고 보기는 힘들겠지만 나름 독특한 전개방식이나 스토리 때문에 마지막화까지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2009-05-26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1기, 만화영화)를 봤습니다.
최근 접한 우울한 사회의 소식도 있고, 공교롭게도 듣는 음악까지 우울한 덕분에 종일 울적한 기분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하필 이런 시기에 듣고 있는 음악이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인 이유는...... 기분을 전환할 겸 만화영화를 찾고 있었는데 최근 가장 화제가 된 작품 같아서 보게 됐습니다. 이전에 작성하던 글이 있었는데 울적한 마음에 때려치워 버렸습니다. 이 작품은 최근 2기 방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개인적으로 크게 주목하고는 있지 않습니다. 상당수의 작품이 스토리나 여러 측면에서 무너지는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와우의 확장팩만 봐도 게임 그래픽이나 시스템 상에서는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지만 스토리의 측면에서는 점점 아스트랄 해져갑니다. 미치고 타락하고 아마 머지 않아서 티탄하고 엘룬도 잡아야 할것 같습니다.)
원작인 소설은 라이트 노벨이라고 하는 장르에 속해있다는데 사실 정체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참조 : http://ko.wikipedia.org/wiki/%EB%9D%BC%EC%9D%B4%ED%8A%B8_%EB%85%B8%EB%B2%A8) 우리나라의 '엽기적인 그녀'(사실 이것도 영화만 봤습니다.)와 비슷한 장르인 모양입니다. 소설까지 접할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에 만화영화의 내용만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사실 이 만화영화를 본 느낌을 이야기하면 복잡합니다. 스토리 라인이 복잡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무엇인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솔직한 느낌으로는 혼선된 라디오 주파수를 잡아놓고 듣고 있는 느낌입니다. 단 스토리 전개 순서의 문제는 아닙니다. 스토리 전개 순서대로 한번, 방영순서대로 한번 두차례에 걸쳐서 감상했습니다. 이 작품은 아직까지 진행중이라서 많은 부분은 추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래 글은 순전한 제 망상일 뿐입니다.
우선 나가토 유키가 이야기하는 정보 생명체란 느낌이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최후의 질문(The Last Question)에서의 AC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물론 코스믹 AC는 인간의 통제를 받지만 정보 생명체는 아마도 어떠한 생명체 또는 존재가 AC와 지능을 가진 생명체의 정신이 결합한 형태로 진화한 개념인 듯 합니다.('최후의 질문'의 후반부에 인간의 정신과 AC가 결합한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에서 AC는 점점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했으며 자신의 대부분은 초공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정보 생명체는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보 생명체가 할수 없는 일은 AC가 엔트로피를 대규모적으로 감소시키는데 충분한 답을 얻기까지 영겁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스즈미야 하루히의 능력일 것입니다.
코이즈미 이츠키의 초능력은 폐쇄공간에서 활성화 하는데 아마도 이 특정 공간은 또다른 평행우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른 평행우주에서는 지금의 물리법칙이 모두 무효하게 된다고 합니다. 일상적인 물리법칙에서는 바로 붕괴할 신인이 존재하거나 코이즈미 이츠키가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다른 평행우주이기 때문이기에 가능합니다. 이 폐쇄공간과 접합점을 가진다는 내용으로 봐서는 아마도 한 평행우주는 다른 우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지지 않고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는 모양입니다. 끈이론에서 두개의 평행우주가 충돌하여 빅뱅이 발생했다는 것처럼요.
아사히나 미쿠루의 시간 이동은 미래의 평행우주로부터 지금의 평행우주를 지키기 위해서 수행되고 있는 듯합니다. 세계를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분기시키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떠한 특정 평행우주로 분기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다르게 두인물과 다른게 어떤 역할을 배후에서 수행하고 있는지 윤곽이 정확하게 판단되지 않습니다.(이것은 할아버지, 정보, 빌커, 성-Sexual-역설같은 시간역설을 낳게 됩니다 - 참조 : http://brownred.tistory.com/118 - . 만약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 평행우주를 의식한 작품이라면 시간 역설을 교묘하게 작가가 이용해서 의외로 아사히나 미쿠루는 쿈의 동생 또는 쿈의 자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화영화에서 쿈의 동생이 가위를 빌려가면서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때리는 행위를 하는데, 미래의 아사히나 미쿠루가 쿈에게 역시 비슷한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능력은 평행우주를 생성하는 능력이며, 이렇게 생각해보면 결국 정보폭발의 의미는 새로운 평행우주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폐쇄 공간이 아닌 개방된 공간을 만듦으로써 아마도 새로운 평행우주를 창조하게 됩니다. 따라서 엄청난 수의 정보가 생성될 것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갈려고 해도 기존의 우주와는 인과율이 깨졌기 때문에 과거로 향할수 없습니다. 새로 나타난 우주와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기존의 평행우주는 이와 동떨어져 독립적인 발전을 할수도 있고, 새로 창조된 우주의 작용에 의해서 또는 인과율이 깨짐으로써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 또한 할 수 있게됩니다. 아마도 첫번째 대규모 변화는 만화영화의 시점으로부터 3년전에 이루어진 모양입니다.
이 만화영화에서 아직 등장하지 않은 것이 바로 이계인입니다. 이계인의 등장은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는 것 같은데 우선은 다른 평행우주의 인물인데 스즈미야 하루히가 생성한 평행우주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인물이거나 SF소설에서 흔히 이야기 하는 SOS단 어떤 인물의 반입자적(성격, 또는 능력등 어떠한 요소가 완전히 반대인) 클론의 형태로 등장할 것 같습니다.(일반인이라는 쿈이 이계인과 어떠한 연결관계를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문의 인물은 바로 쿈입니다. 지극히 정상인 일반인이라는 설정이지만, 실상은 이름조차도 알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거기에 SOS단에서 일반인이라니 뭔가 이상합니다. SOS단의 각각의 캐릭터는 이름과 능력이 최소한 표면적으로 모두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이라는 쿈은 본명을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다른 많은 등장인물의 이름 역시 알수 없지만 SOS단에 속해있고, 거기에 만화의 시점을 제공하는 인물인데 이름조차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숨겨진 메시지가 있다는 의도 같습니다. 지극한 현실주의자라는 설정이지만 내심 스즈미야 하루히와 유사하게 우주인, 미래인, 초능력자의 존재를 바라고 있기도 합니다. 지극한 현실주의자면서 이들의 등장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뭐낙 이상하다는 느낌이 너무도 강합니다.(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통 연습이나 이미지 트레이이닝을 거칩니다. 이에 준하는 절차가 존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SOS단의 여성 캐릭터들은 쿈이 좋아하는 여성형과 상당히 가까운 인물들로 보입니다. (쿈의 친구가 이야기하는 A등급 여학생들이 3명이나 있는 집단이 SOS단입니다.)
스즈미야 하루히가 창조한 평행우주에서 다시 원래 평행우주로 돌아온후 '프로이트 선생님이 웃겠네'라는 말을 합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분명 지극한 현실주의자인 쿈은 의식의 영역입니다. 비현실적인 우주인, 미래인, 초능력자를 바라는 마음은 무의식의 세계에 잠재해 있을 것입니다. 코이즈미 이츠키는 '사실 이 세계는 어떤 존재가 꾸고 있는 꿈 같은 것은 아닐까'라는 말을 하는데 꿈은 바로 무의식이 전면에 등장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의식의 영역은 최종적으로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요? 이 무의식의 향방이 앞으로의 전개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될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의 거대한 흐름을 바꿔놓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스즈미야 하루히가 만든 평행우주중 활성화할 세계를 선택하는 역할을 하거나 스즈미야 하루히가 평행우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쿈이 필요하거나 의외로 다른 4명과 차원이 다른 수준의 능력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기되는 또다른 문제는 3년전의 평행우주의 변화인데, 쿈이 능력자라면 3년전 평행우주의 변화가 있었던 시점에 어떠한 방법이든 스즈미야 하루히와 쿈의 소통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단서는 작품 초반에 스즈미야 하루히가 '나, 어디서 너랑 만난적 있니? 오래전에 말이야'라는 대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 3인물이 스즈미야 하루히에게 밝히지 않는 것처럼 쿈에게도 뭔가 비밀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쨋든 중요한 점은 스즈미야 하루히의 중요한 행동에는 쿈이 어느정도 개입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좀더 이야기가 전개되야 할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아직 스토리가 진행중인 작품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재미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잠깐 잠깐 웃을 수 있는 개그 요소라든지 여러 캐릭터의 독특한 개성으로 누군가 한명에게는 호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참 좋았는데 정작 설명해 줘야 할 부분은 얼버무린 후 덮어놓고 넘어가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만화영화 스토리 전개의 특징이 여러가지 복선을 여기저기 심으며, 문어발식으로 스토리를 확장한후 급격하게 서로의 연결관계와 설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해보면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스토리 전개에 호감을 못느끼는 개인적인 부분이 작용해서 그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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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5. 26 5:50
수정했습니다. 아직 글을 다 쓰지는 못했지만, 중간에 올립니다. 끝까지 쓸 자신이 없어서요.
원작인 소설은 라이트 노벨이라고 하는 장르에 속해있다는데 사실 정체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참조 : http://ko.wikipedia.org/wiki/%EB%9D%BC%EC%9D%B4%ED%8A%B8_%EB%85%B8%EB%B2%A8) 우리나라의 '엽기적인 그녀'(사실 이것도 영화만 봤습니다.)와 비슷한 장르인 모양입니다. 소설까지 접할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에 만화영화의 내용만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사실 이 만화영화를 본 느낌을 이야기하면 복잡합니다. 스토리 라인이 복잡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무엇인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솔직한 느낌으로는 혼선된 라디오 주파수를 잡아놓고 듣고 있는 느낌입니다. 단 스토리 전개 순서의 문제는 아닙니다. 스토리 전개 순서대로 한번, 방영순서대로 한번 두차례에 걸쳐서 감상했습니다. 이 작품은 아직까지 진행중이라서 많은 부분은 추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래 글은 순전한 제 망상일 뿐입니다.
우선 나가토 유키가 이야기하는 정보 생명체란 느낌이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최후의 질문(The Last Question)에서의 AC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물론 코스믹 AC는 인간의 통제를 받지만 정보 생명체는 아마도 어떠한 생명체 또는 존재가 AC와 지능을 가진 생명체의 정신이 결합한 형태로 진화한 개념인 듯 합니다.('최후의 질문'의 후반부에 인간의 정신과 AC가 결합한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에서 AC는 점점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했으며 자신의 대부분은 초공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정보 생명체는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보 생명체가 할수 없는 일은 AC가 엔트로피를 대규모적으로 감소시키는데 충분한 답을 얻기까지 영겁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스즈미야 하루히의 능력일 것입니다.
코이즈미 이츠키의 초능력은 폐쇄공간에서 활성화 하는데 아마도 이 특정 공간은 또다른 평행우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른 평행우주에서는 지금의 물리법칙이 모두 무효하게 된다고 합니다. 일상적인 물리법칙에서는 바로 붕괴할 신인이 존재하거나 코이즈미 이츠키가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다른 평행우주이기 때문이기에 가능합니다. 이 폐쇄공간과 접합점을 가진다는 내용으로 봐서는 아마도 한 평행우주는 다른 우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지지 않고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는 모양입니다. 끈이론에서 두개의 평행우주가 충돌하여 빅뱅이 발생했다는 것처럼요.
아사히나 미쿠루의 시간 이동은 미래의 평행우주로부터 지금의 평행우주를 지키기 위해서 수행되고 있는 듯합니다. 세계를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분기시키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떠한 특정 평행우주로 분기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다르게 두인물과 다른게 어떤 역할을 배후에서 수행하고 있는지 윤곽이 정확하게 판단되지 않습니다.(이것은 할아버지, 정보, 빌커, 성-Sexual-역설같은 시간역설을 낳게 됩니다 - 참조 : http://brownred.tistory.com/118 - . 만약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 평행우주를 의식한 작품이라면 시간 역설을 교묘하게 작가가 이용해서 의외로 아사히나 미쿠루는 쿈의 동생 또는 쿈의 자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화영화에서 쿈의 동생이 가위를 빌려가면서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때리는 행위를 하는데, 미래의 아사히나 미쿠루가 쿈에게 역시 비슷한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능력은 평행우주를 생성하는 능력이며, 이렇게 생각해보면 결국 정보폭발의 의미는 새로운 평행우주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폐쇄 공간이 아닌 개방된 공간을 만듦으로써 아마도 새로운 평행우주를 창조하게 됩니다. 따라서 엄청난 수의 정보가 생성될 것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갈려고 해도 기존의 우주와는 인과율이 깨졌기 때문에 과거로 향할수 없습니다. 새로 나타난 우주와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기존의 평행우주는 이와 동떨어져 독립적인 발전을 할수도 있고, 새로 창조된 우주의 작용에 의해서 또는 인과율이 깨짐으로써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 또한 할 수 있게됩니다. 아마도 첫번째 대규모 변화는 만화영화의 시점으로부터 3년전에 이루어진 모양입니다.
이 만화영화에서 아직 등장하지 않은 것이 바로 이계인입니다. 이계인의 등장은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는 것 같은데 우선은 다른 평행우주의 인물인데 스즈미야 하루히가 생성한 평행우주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인물이거나 SF소설에서 흔히 이야기 하는 SOS단 어떤 인물의 반입자적(성격, 또는 능력등 어떠한 요소가 완전히 반대인) 클론의 형태로 등장할 것 같습니다.(일반인이라는 쿈이 이계인과 어떠한 연결관계를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문의 인물은 바로 쿈입니다. 지극히 정상인 일반인이라는 설정이지만, 실상은 이름조차도 알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거기에 SOS단에서 일반인이라니 뭔가 이상합니다. SOS단의 각각의 캐릭터는 이름과 능력이 최소한 표면적으로 모두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이라는 쿈은 본명을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다른 많은 등장인물의 이름 역시 알수 없지만 SOS단에 속해있고, 거기에 만화의 시점을 제공하는 인물인데 이름조차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숨겨진 메시지가 있다는 의도 같습니다. 지극한 현실주의자라는 설정이지만 내심 스즈미야 하루히와 유사하게 우주인, 미래인, 초능력자의 존재를 바라고 있기도 합니다. 지극한 현실주의자면서 이들의 등장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뭐낙 이상하다는 느낌이 너무도 강합니다.(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통 연습이나 이미지 트레이이닝을 거칩니다. 이에 준하는 절차가 존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SOS단의 여성 캐릭터들은 쿈이 좋아하는 여성형과 상당히 가까운 인물들로 보입니다. (쿈의 친구가 이야기하는 A등급 여학생들이 3명이나 있는 집단이 SOS단입니다.)
스즈미야 하루히가 창조한 평행우주에서 다시 원래 평행우주로 돌아온후 '프로이트 선생님이 웃겠네'라는 말을 합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분명 지극한 현실주의자인 쿈은 의식의 영역입니다. 비현실적인 우주인, 미래인, 초능력자를 바라는 마음은 무의식의 세계에 잠재해 있을 것입니다. 코이즈미 이츠키는 '사실 이 세계는 어떤 존재가 꾸고 있는 꿈 같은 것은 아닐까'라는 말을 하는데 꿈은 바로 무의식이 전면에 등장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의식의 영역은 최종적으로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요? 이 무의식의 향방이 앞으로의 전개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될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의 거대한 흐름을 바꿔놓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스즈미야 하루히가 만든 평행우주중 활성화할 세계를 선택하는 역할을 하거나 스즈미야 하루히가 평행우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쿈이 필요하거나 의외로 다른 4명과 차원이 다른 수준의 능력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기되는 또다른 문제는 3년전의 평행우주의 변화인데, 쿈이 능력자라면 3년전 평행우주의 변화가 있었던 시점에 어떠한 방법이든 스즈미야 하루히와 쿈의 소통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단서는 작품 초반에 스즈미야 하루히가 '나, 어디서 너랑 만난적 있니? 오래전에 말이야'라는 대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 3인물이 스즈미야 하루히에게 밝히지 않는 것처럼 쿈에게도 뭔가 비밀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쨋든 중요한 점은 스즈미야 하루히의 중요한 행동에는 쿈이 어느정도 개입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좀더 이야기가 전개되야 할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아직 스토리가 진행중인 작품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재미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잠깐 잠깐 웃을 수 있는 개그 요소라든지 여러 캐릭터의 독특한 개성으로 누군가 한명에게는 호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참 좋았는데 정작 설명해 줘야 할 부분은 얼버무린 후 덮어놓고 넘어가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만화영화 스토리 전개의 특징이 여러가지 복선을 여기저기 심으며, 문어발식으로 스토리를 확장한후 급격하게 서로의 연결관계와 설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해보면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스토리 전개에 호감을 못느끼는 개인적인 부분이 작용해서 그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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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5. 26 5:50
수정했습니다. 아직 글을 다 쓰지는 못했지만, 중간에 올립니다. 끝까지 쓸 자신이 없어서요.
2007-11-25
'200살을 맞은 사나이'와 '쵸비츠'를 보면서...
얼마전 '200살을 맞은 사나이'와 '쵸비츠' 두 작품간의 유사점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두 작품 사이에는 어느정도 미묘한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작품간에 흐르는 뭔가 비슷한 것이 강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땅에 발을 딪기 시작하면서, 말하자면 저 같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신이 인간을 창조하면서, 진화론자들에게는 인간이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한가지 문제에 당연하게 봉착하게 됩니다. 바로 인간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과거부터 무척 복잡했던 이 문제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인간이 과학기술과 만나게 되면서 복잡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인간에 대한 문제라면,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인 존재에 대해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시체는 과거 인간이었던 존재로써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살아있는 분명 인격의 주체로서 대우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구분점이 점점 모호해져가고 있습니다.
뇌사의 경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을 통해서 (예외적으로) 뇌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심장 또는 폐가 멈추었을 때 사람이 사망한 것이라면, 이 법률에서는 예외적으로 뇌사시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의제합니다. 물론 과거의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뇌사한 사람도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뇌사라도 폐와 심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사람을 사망한 것으로 의제하고 장기를 이용한다는 비판과, 실제 필요성 간에 고심한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인간의 시작에 대해서도 점점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태어났을 때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학설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공법과 사법의 기준이 미묘하게 다른 것은 여기에서는 논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태아라는 무척 난감한 문제가 놓여 있지만, 이것에 더해서 이제는 수정란이라는 문제까지 더해졌습니다. 가끔 뉴스나 잡지를 통해서 접해보면, 최근 유전학 또는 생물학의 주요 태마중 하나가 복제와, 유전자공학, 그리고 배아세포/줄기세포에 대한 부분인 듯 합니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겠지만, 복제를 통해서 사람이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수단으로 이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배아세포의 경우에는 이를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가 문제됩니다. 단순한 세포에 불과하고 아직 인간의 형태를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질병 치료등의 목적으로 어느정도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발달할 가능성이 존재하고 '멋진 신세계(물론 암울하기 그지없고, 인간을 대량생산하는 소설이지만)'처럼 만약 수정란으로부터 인간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마련된다면, 도대체 어디부터 인간이고 어디부터 세포 또는 세포의 집단으로 인식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인간이라는 '존엄한' 존재로 발달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수정란을 특정 목적에 이용한 다는 것 또한 윤리적인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부분에 더해서 200살을 맞은 사나이나 쵸비츠와 같이 인간과 같이 사고할 수 있는 로봇 또는 기계장치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문제됐던 것들은 모두 인간이란 세포 또는 유전자를 기반하고 있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이 영역을 벗어나 버립니다. 우리가 인간이라 부르는 실질은 어디에 있는지가 문제되는 순간인데 이것에 대해서 쉽게 답할 수가 없습니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의 문제는 모두 쉽게 해결될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난점은 인간이 스스로를 특별하게 대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인데,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인간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은 뭔가 다른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인간으로 인정하기를 매우 꺼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인간인데도 자신과는 다른 사람, 민족, 인종에 대해서는 우리는 냉담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을 인간으로서 동정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치부해 버릴때도 많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학살(genocide)이라든지 노예제도에서 나타납니다. 우선 상대를 비인간화 한 후라면 상대의 생명은 인종청소, 고역등을 위해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라면 이런 점은 더해갈 것입니다. 만약 상대가 인가과 같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 할지라도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아닌이상 비인간화의 과정조차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생물학적 인간이 아닐지라도 인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인간다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는 정말로 복잡한 난점들이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우리는 모법답안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풀 수 있는 도구는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 평등, 정의, 사랑 이런 단어들을 우리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들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 내릴 수 없지만,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엮어 나가는가는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만화영화와 소설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제 생각은 피상적이기 그지 없는 것 같은데 좀더 생각하고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그만큼 좀더 배우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더하는 글
이 글에서는 인간과 사람을 혼용해서 사용했습니다. 문맥상 매끄러운 전개를 위해서 둘 모두를 사용했습니다. 의미에 큰 차이를 둔것은 아닙니다.
2007-11-11
쵸비츠와 200살을 맞은 사나이
1. 특별한 존재로써의 로봇(컴퓨터)
우선 200살을 맞은 사나이에서 앤드류(주인공, 로봇)는 생각할 수 있는 로봇입니다. 기술이 아직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로봇인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인간의 창의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로봇은 앤드류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모두 짜여진 프로그램에 따라서 행동할 뿐입니다.
쵸비츠에서는 치이는, 우선 두개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인간형 컴퓨터를 개발한 사람이 만든 결정체와 같은 컴퓨터이기에 모두가 특별한 존재로 인식될 가치가 충분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결국 사라지고 맙니다. 사실 쵸비츠에서는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가 상당수 등장하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치이가 특별한 존재인 것은 사실입니다.
2. 인간과 같은 감성
1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앤드류의 양자두뇌는 인간의 뇌와 비슷한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쵸비츠에서도 컴퓨터들의 행동을 보면 인간과 비슷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고 느끼게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치이의 행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3. 소유자의 신이 내린듯한 성품
사실 앤드류도 치이도 모두 악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돈을 번다든지 하는 악의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로봇(컴퓨터)입니다. 하지만, 앤드류의 소유자였던 '제랄드 마틴'도 히데키도 악의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앤드류를 '합중국 로봇 및 기계 인간 회사'에 넘기는 것을 거부하였으며, 앤드류가 번 돈의 일부를 앤드류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쵸비츠에서 히데키 역시 치이가 번돈을 치이가 사용하게 한다든지, 여러가지 행동을 통해서 치이를 보호합니다.
4. 이름의 의미
길가의 개나 어린 아이들의 인형조차 가지고 있는 것이 이름이지만, 두 작품의 작가들은 이를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앤드류는 작은 아씨로부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치이는 히데키로부터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더 재미있는 점을 이름을 지어준 존재가 이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점입니다.
하기야 김춘수님의 '꽃'과 같은 시를 읽어보면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길지 않으니 시를 여기에 옮겨놨습니다.
꽃 - 열기
5. 든든한 후원자(백!)의 존재
앤드류의 백은 사실 엄청납니다. 작은 아씨로부터 폴까지 이어지는 후손들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었으며 특히 폴은 변호사로서 상당한 명성과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 앤드류를 도와주는 존재는 'Chee Li-hsing'이란 사람입니다.(공교롭게도 쵸비츠의 주인공의 이름을 영문으로 표기하면 Chii. 'ee'를 장음으로 읽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의도적이었든지 우연의 일치였든지 어쨋든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하는 측면입니다.) Chee Li-hsing은 세계의회 의원으로서 과학기술 위원회의 의장입니다.
쵸비츠 에서는 치이를 숨어서 돌보는 존재는 히비야라는 여성인데, 바로 인간형 컴퓨터 개발자의 배우자이자 쵸비츠 시리즈를 개발하는데 참여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디에서 돈을 마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안에 초고속 인터넷회선과(어지간한 기업의 회선보다 빠르다고 합니다. 광라인 하나 끌어오는데도 돈이 얼마인데..) 엄청난 컴퓨터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거기에 치이의 내부에 있는 프레이어 역시 큰 도움, 어쩌면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존재입니다. 마지막에 치이와 마주치게 되는 두 컴퓨터-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심판자로서의 존재이긴 하지만-결과적으로 치이를 돕는 존재입니다.
6. 인간성의 인정을 갈구하는 로봇(컴퓨터)
두 작품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인 로봇(컴퓨터)는 무엇인가를 달성하려고 노력합니다. 앤드류는 자신이 인류로부터 인간으로 인정받기를 갈구합니다. 이미 그의 신체는 인간이라고 불릴 정도로 개조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음식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는 정도까지 발전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체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로부터는 인간이 아닌 존재로 인식될 뿐입니다.
치이 역시 만화영화를 보면 귀를 제외한 부분은 외관상으로 완벽한 인간입니다. 행동또한 2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인간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로봇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치이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인데, 여기에서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남녀간의 사랑의 대상은 인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물건에 대해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인류의 뿌리깊은 금기사항입니다.) 따라서 치이가 히데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 또는 인간과 동일화 될 수 있는 존재로 변화하는 히데키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사실 쵸비츠에서 , 치이라는 존재가 인간성을 획득한다면,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귀엽고, 이쁘고, 사랑스럽고 하여튼 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존재로서 설정이 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장애물은 자신이 로봇(컴퓨터)이라는 점입니다.
두 작품에서 두 로봇(컴퓨터)가 원하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로 인류 혹은 상대방에게 인정받는 것인데, 조금더 범위를 좁히자면 인간으로서 인정받는 것, 바로 자신의 인간성에 대해서 인류 혹은 상대방에게 인정받는 것이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7. 자신이 로봇이라는 한계 자각
앤드류를 로봇이란 이유로 큰 위험을 맞이합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불량배들로부터 하마터면 분해될 뻔한 위기에 처합니다. 또한 인류 복지의 증진에 큰 기여를 하였지만, 한가지 한계를 계속해서 달고 있습니다. 바로 로봇이란 점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한한 노력을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치이 역시 히데키와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손에 넣기 직전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 위기의 원인은 바로 자신이 컴퓨터(로봇)이라는 점입니다. 사랑하는데 컴퓨터(로봇)으로는 한계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8. 한계의 극복
결과적으로 이들 존재는 이러한 한계의 자각으로 인해서 불완전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다면 소설 또는 만화영화는 무척 재미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결국 이를 극복하기 위한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우선 200살을 맞은 사나이에서 앤드류는 죽음을 선택합니다. 이유는 인간은 죽지만 로봇은 죽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느낌이나 정황까지 정확하게 전달하기 힘드네요.) 결국 죽음을 통해서 앤드류는 인류로부터 인간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쵸비츠에서 치이는 심각한 위기를 결국 행복과 추억이라는 말의 의미를 통해서 극복합니다.(결말이 만화영화와 만화가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만화의 내용은 잘 모르기 때문에 만화영화를 기준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쵸비츠 시리즈의 개발자의 꿈이 로봇의 행복이었지만, 이미 프레이어가 실패했고 치이역시 비슷한 결말로 치닫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납니다. 추억이란 히데키의 말에 의하면 데이터처럼 삭제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초기화에도 삭제 되지 않고 기억이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히데키의 행복의 정의에 따라서 위기를 극복하게 됩니다.
9. 로봇의 3원칙
200살을 맞은 사나이에서 일부를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The Three Laws of Robotics:
1. A robot may not injure a human being or, through inaction, allow a human being to come to harm.
2. A robot must obey the orders given it by human beings except where such orders would conflict with the First Law.
3. A robot must protect its own existence as long as such protection does not conflict with the First or Second Law.
200살을 맞은 사나이만큼 엄격하게 쵸비츠에서 지켜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지켜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원칙에서 '인간(human being)'을 '사랑하는 사람(혹은 존재)'로 축소시킨다면 거의 완벽하게 지켜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 로봇의 인간성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
사람들은 로봇(컴퓨터)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200살을 맞은 사나이에서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앤드류와 리싱의 대화내용 중 일부입니다.
대화내용 보기
사실 쵸비츠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강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등장인물의 일부 행동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유미나 미노루, 타카코의 이야기나 행동에서 강하게 나타납니다.
10의 내용은 다음 글과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다음 글은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한 내용을 쓸 생각입니다.
며칠전 마지막화까지 모두 봤는데, 정말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예전에 읽었던 200살을 맞은 사나이도 한번 더 읽고.... 쵸비츠란 애니메이션은 20분씩 총 27화로 이루어져 있으니 전체를 보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200살을 맞은 사나이는 20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이니 넉넉하게 1시간정도면 전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2007-11-08
요즘 쵸비츠란 만화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케이블 방송을 통해서 방영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몇화씩 띄엄띄엄 보긴 했어도 그림도 이쁘고 스토리도 괜찮은 것 같고 나름대로 인상이 깊었던 작품인데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틈틈히 한편씩 보고 있습니다.
SF 만화영화로 생각하고 나름 '정말 잘 만들었구나!' 하면서 감탄하고 있었는데, 인터넷을 통해서 찾아보니 SF작품이 아니었습니다.('1984년'과 같은 소설도 SF작품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SF작품이라 해도 상관 없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200살을 맞은 사나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A.I'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많은 수의 소설이나 영화를 지금까지 본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200살을 맞은 사나이'나 'A.I'를 엄청나게 재미있게 봤기 때문인지 자꾸 SF 만화영화로만 보입니다. 사실 이 작품의 주인공의 이름인 치이(Chii)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억이 있어서 찾아보니 '200살을 맞은 사나이'의 등장인물중 한사람의 성(Chee)과 비슷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우선 중간 평가는, 그림도 이쁘고, 동작도 자연스럽고, 스토리도 꽤 탄탄합니다. 일부 19금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사실 인터넷에 돌아다는 동영상이 판치는 세상이고 그렇고 심하게 노골적이지 않은 만큼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보통인이라면 충분히 걸러낼 수 있는 정도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스토리에서 문제의 소지가 군데군데 보입니다. 스토리가 억지스럽거나 노골적이다기 보다는 결론 내리기 너무 머리아픈 테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라면 결말을 열어놓거나 살짝 회피하는 방법이 있겠지만(예를 들면 둘 또는 둘중 하나가 모종의 이유로 죽는다든지 멀리 떠난다는지, 결국 다른 존재로 변화한다 등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TV시리즈물로 기획된 만화영화에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기계가 될 수도 없고, 기계가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은 거의 이쪽 작품에서는 불문율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극적인 결말의 가능성도 있지만, TV시리즈물로 기획횐 만화영화라면 거의 대부분이 행복한 결말입니다. 결국 분명히 논란에 휩싸이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재미있지만, 상당히 평가절하한 의견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마지막화에 가까워지고 있는 시점이니 최종화까지 모두 본 후 글을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註. 완결된 작품입니다. 제가 보고 있는 곳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TV시리즈물 만화영화로는 예전에 동생 뒤에서 한편한편 보다가 무척 재미있게 본 '카드캡터 사쿠라'(註. 수중생물은 남자입니다.........), 투니버스에서 몇편 보고 빠져들어간 '아즈망가 대왕' 이후로는 이정도까지 재미있게 본 적이 없으니 한동한 kkoyee.com에 이 작품에 대한 글을 꽤 올릴 것 같습니다.
2007-03-01
요즘 다시(?) 재미있게 보는 만화영화 '아즈망가 대왕'
아마 이 작품을 많이 보던 시기는 2002~2003년 정도로 기억합니다..
딱 저 군대가기 전의 시기입니다..;;
그때 띄엄띄엄 몇편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후로 기억에서 잊혀진 작품중 하나입니다..
얼마전 다시 TV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자막을 26개나 수정해야한 스토리는 그냥 넘어가고(앗..이미지를 보니 영문...)....
항상 이런 여고생 내지는 학교생활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나오면, 실재 학교와는 딴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정말 사실적인 모습을 그린다면.. 저 같으면 그런 작품 안봅니다..;
이 작품의 재미라면, 여백입니다.
어떤 사건 이후 잠시의 침묵은 지루함을 유발시킬 수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반대로 웃게 만듭니다...
많은 요소가 유사 만화와 비슷한 것 같은데 또 유사 만화와 다르게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물론 본 작품이 거의 없긴 하지만...)
지금 이제 제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할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다...
딱 저 군대가기 전의 시기입니다..;;
그때 띄엄띄엄 몇편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후로 기억에서 잊혀진 작품중 하나입니다..
얼마전 다시 TV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자막을 26개나 수정해야한 스토리는 그냥 넘어가고(앗..이미지를 보니 영문...)....
항상 이런 여고생 내지는 학교생활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나오면, 실재 학교와는 딴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정말 사실적인 모습을 그린다면.. 저 같으면 그런 작품 안봅니다..;
이 작품의 재미라면, 여백입니다.
어떤 사건 이후 잠시의 침묵은 지루함을 유발시킬 수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반대로 웃게 만듭니다...
많은 요소가 유사 만화와 비슷한 것 같은데 또 유사 만화와 다르게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물론 본 작품이 거의 없긴 하지만...)
지금 이제 제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할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다...
2007-02-14
요즘 재미있게 보는 만화영화 - 두근두근 비밀친구~!
우선 들어가기에 앞서 애니메이션(animation)이란 단어보다는 만화영화란 단어를 개인적으로는 더 좋아한다.
머리가 굳어서인지 레스토랑(restaurant)과 식당이 왜 의미상의 차이가 있어야 하는지 모르겟다.
분명 외국어가 그 의미를 전달하는데 적절하다면 이용해야 한다.(만화영화가 한자어란 사실은 논외로 하자..)
하지만 애니메이션과 만화영화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좀더 고급스럽게 들리는 것이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만화영화란 단어가 좀더 직관적이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 '만화영화'란 단어의 사용을 주장하면서도 '애니메이션'이란 단어의 사용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새벽2시쯤 잠을 자려고 TV를 켜면 투니버스에서 시간대에 맞지 않는 듯한 만화를 방영하고 있다.
예전에도 이 작품을 몇번 본적이 있었다.
그때는 유치한 아동 만화로 생각하고 채널을 돌려버렸다.
위 이미지를 보면 바로 느낄 것이다.
유치하다... 이것이 바로 이 만화의 매력이다.
물론 극 사실을 추구하는 작품이 아니라면 유치함이 없는 만화영화라... 재미없다.
하지만 이 유치함의 대상은 작품에 따라서 달라진다...(물론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의 유치함은 표면적으로는 최소한 아동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위 이미지를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시청하다보니 동화해 버렸다...
왜 이리 내가 이런 작품에 끌려야 하는 것일까?
답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결론은 이러하다...
겉으로 보이는 이 만화의 아동을 위한 유치함은 정말로 아동을 위한 유치함일까?
저기 보이는 아미가(이미지 아래의 여자아이) 5살이라한다...
5살 짜리 여자아이가 이렇게 냉소적이고 현실적인가?
물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만'으로 생각해보면 7살까지도 생각해 볼수 있지만 7살 짜리라 보기도 좀 그렇다..
요즘 어린아이들 정말 똑똑하다... 하지만 최소한 현실적이고 냉소적이진 않다.
자주 등장하는 캔다, 이싸, 이요(아래 보이는 곰, 팬더, 토끼) 아동용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엽기적이다.
만화의 내용, 크게 아동의 시선으로 봐도 문제될 만큼 잔인한 내용은 안보인다...
그런데, 그런데, 딴지걸기, 괴롭히기, 이중인격 등등 맥락으로 볼때는 좀 문제될 것이 많다.
이런 것은 좀더 연령대가 높은 프로그램에서 많이 사용된다.
처음부터 본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성급하게 결론 내리기는 조금 위험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이 작품 최소한 나한테는 정말 재미있다...
2006-12-31
천공의성 라퓨타....
극장에 좀처럼 좀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거의 가지 않는 내가 극장에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만든 작품이다.
지금까지 봤던 애니메이션 중.. 아니 다른 것을 합쳐도 정말 최고라 불릴만한 작품이 바로 이것이다..
천공의 섬 라퓨타.. 우연히 고등학교 때 처음 보게된 애니메이션이다..
그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제작년도가 상당히 지난 후였으니 그래픽도 멋져 보이지 않았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일보다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었으니까.. 열심히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 이후 역시 배경은 고등학교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일 것이다.
우연히 다시 보게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미야자키하야오...(이름 맞나?) 토토로와 같이 엄청난 것을 만든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시에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이사람에 대해서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어쨋든 상당한 인상을 받게된 애니메이션인 것이 지금도 그 느낌이 생생하니까..
군대에서 열심히 망보고 있을때 이 애니메이션이 개봉했다.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별로 관심없다..
관심 없다기 보다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 거의 맞을테니까..
솔직히 극장에서 보고 싶었다.. 하지만 뭐 어쩔수 없지 않은가...
위 장면은 나름대로 멋지다고 생각하는 장면을 캡쳐한 것이다.
사실은 이 다음 장면, 정확하게 말하면 대사가 더 멋진 것 같지만, 다 올리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애니메이션은 인간의 상상을 표현하는데 영화보다는 좀더 자유롭다...
동생이 어릴때 고래를 그린 그림이 있었다..
얼마전 그 그림을 보게 되었을때, 정말 충격이었다....
솔직히 지금의 내 상상력을 가뿐히 뛰어넘어 주었기 때문이다..
사진과 그림의 다른점이 바로 이것이다..
고래를 사진으로 찍어 놓는다면 사진을 찍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서 엄청난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진은 사진, 배경은 최소한 연출되었든 자연스러운 상황이든 현실이다.
애니메이션 역시 이러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조건을 충분히 뛰어 넘어준다..
물론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모두에게는 각각의 기준이 있을테고 또 그래야 하니까..
적어도 내 기준하에서는 정말로 괜찮은, 아니 멋진 작품임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봤던 애니메이션 중.. 아니 다른 것을 합쳐도 정말 최고라 불릴만한 작품이 바로 이것이다..
천공의 섬 라퓨타.. 우연히 고등학교 때 처음 보게된 애니메이션이다..
그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제작년도가 상당히 지난 후였으니 그래픽도 멋져 보이지 않았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일보다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었으니까.. 열심히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 이후 역시 배경은 고등학교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일 것이다.
우연히 다시 보게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미야자키하야오...(이름 맞나?) 토토로와 같이 엄청난 것을 만든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시에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이사람에 대해서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어쨋든 상당한 인상을 받게된 애니메이션인 것이 지금도 그 느낌이 생생하니까..
군대에서 열심히 망보고 있을때 이 애니메이션이 개봉했다.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별로 관심없다..
관심 없다기 보다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 거의 맞을테니까..
솔직히 극장에서 보고 싶었다.. 하지만 뭐 어쩔수 없지 않은가...
위 장면은 나름대로 멋지다고 생각하는 장면을 캡쳐한 것이다.
사실은 이 다음 장면, 정확하게 말하면 대사가 더 멋진 것 같지만, 다 올리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애니메이션은 인간의 상상을 표현하는데 영화보다는 좀더 자유롭다...
동생이 어릴때 고래를 그린 그림이 있었다..
얼마전 그 그림을 보게 되었을때, 정말 충격이었다....
솔직히 지금의 내 상상력을 가뿐히 뛰어넘어 주었기 때문이다..
사진과 그림의 다른점이 바로 이것이다..
고래를 사진으로 찍어 놓는다면 사진을 찍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서 엄청난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진은 사진, 배경은 최소한 연출되었든 자연스러운 상황이든 현실이다.
애니메이션 역시 이러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조건을 충분히 뛰어 넘어준다..
물론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모두에게는 각각의 기준이 있을테고 또 그래야 하니까..
적어도 내 기준하에서는 정말로 괜찮은, 아니 멋진 작품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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