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29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것은 고교 시절의 음악 과제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만난지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고, 거기에 한동안 이 작품은 그저 소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음악 선생님이 여러 작품이 기재된 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그중 한곡을 선택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제였는데 대담하게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선택했습니다. 나름대로 여러가지 경로로 이 곡에 대해서 들은 것도 있었고, 음악 과제라는 새로운 곡을 감상하기 위한 좋은 기회도 있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이 나중의 거대한 변화의 시작점이 되는 경우를 종종 접하곤 합니다. 아직 많은 곡을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얼마 안되는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영향을 미친 작품이 몇몇이 있습니다. 이런 작품중 하나가 저에게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입니다.

처음 접했을 때는 상당히 당황했습니다. 황당한 전개에 도저히 알아 들을 수가 없는 음악이었습니다. 현대 클래식을 감상을 목적으로 처음 접한 것은 처음인데다가 너무도 원시적인 듯하고 강렬한 느낌은 정신을 멍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어느정도 이런 점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뭔가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을 대충 감상한 다음 더 대충 음악 보고서를 작성하고는 이 작품을 오랜기간 듣지 않았습니다. 어떤 내용의 보고서였는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냥 여기저기에서 짜집기한 뒤 충격적인 음악이라는 감상을 덧붙인 대강대강 얼버무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저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소음덩어리였으니 이 이상은 힘들었습니다.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간 후 열심히 베토벤의 후기곡들을 접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우연하게 구석에 있는 CD를 보고는 한번 듣고 구석에 내박쳐 놓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휴대용CDP와 CD를 들고 학교에 나섰습니다. 해드셋을 끼고 학교를 등교하면서 거리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이 작품의 모습과 거리의 모습이 미묘하게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흑백화면이 컬러화면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러시아 이교도들의 의식을 회화화 하고 있는 발레 음악이라고 합니다.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처녀들이 선택되고 희생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데, 다른 의미에서 이 작품은 현대문명의 모순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현대문명은 원시성을 띄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과 과학이 발달한 현대문명에서 전쟁과 학살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고립되고 있는 개개인들은 서로의 유대감을 확인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여러가지 의식과 제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이후에는 여러 현대 음악을 접하려 나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감상하는데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은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이래야 한다는 제 생각은 한동안 이 음악을 멀리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만들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열린 자세로 새로운 것과 만남을 가지려 노력하지만 또 어떤 편견이 저를 가로막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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