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은 읽고 책장을 넘길때마다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든 무엇인가가 있었던 반면에 읽으면서 화나고 짜증나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윈스턴이 처절하게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조지 오웰의 '1984년'의 세계관에 어떻게든 타격을 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쥐어짜내서 글 하나를 올렸지만, 솔직히 말하면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괴상한 모습의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동물농장'도 '1984년'과 비슷한 느낌의 소설입니다. 한가지 체제(아마도 사회주의)가 변질되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단 '1984'년은 변질이 극도에 이른 사회에서 한개인의 파멸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동물농장'은 변질되어 가는 모습 그 자체를 그리고 있습니다. '1984년'에 비해서 분량이 적기 때문에 천천히 읽어도 반나절정도 걸릴 듯 합니다.
아마도 '동물농장'(이제부터 인용부호 생략하겠습니다. 귀차니즘의 압박이라고 해야하나요?)의 등장인물 하나하나는 특정 인물을 우화화 한 것처럼 보입니다. 존즈, 나폴레옹, 메이저, 스노볼 등의 등장인물(동물?)은 잘 살펴보면 하나하나에 연상되는 인물 있고, 두번의 전투 또한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의 상황과 어느정도 맞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벗어난 시점에 제가 있어서 그런지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물농장'은 소련 사회주의의 변질을 비판한 소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이데올로기 논쟁은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전혀 의미가 없는 소설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민주주의에서도 이러한 위험이 상존해 있습니다. '1984년'또는 '동물농장'의 디스토피아는 민주주의조차도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4년과 동물농장에서 사람(동물)들을 통제하는 방법은 바로 정보의 조작과 통제, 그리고 적의 설정과 적에 대한 공포를 이용했습니다. 정보의 조작과 통제, 그리고 적의 설정과 공포감의 조성이 지금의 사회에서도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일부 매체의 거대화, 정부 또는 거대 기업집단이 인터넷과 매체를 장악하려고 하는 모습과 기술의 발달 모습을 보면 오히려 위험성이 증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인터넷을 보면 불과 수년전의 자유로운 모습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국가 안보 또는 사회 안전이란 미명하에 통제가 점점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통제의 필요성은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사회가 거대화되고 고도화되면서 이러한 것이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언제 칼날을 돌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통제가 과연 정말 사회를 위한 것인지 일부 특권층을 위한 것인지 이미 너무 거대화한 사회에서 전체를 조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정보를 오히려 통제하는 측으로부터 얻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세한 문제상황, 전문적인 지식, 통계자료, 정보를 알릴 수 있는 매체등의 측면에서 통제하는 측이 우위에 서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이 어떠한 정보 또는 불합리성에 대한 확신이 있더라도 상대방의 여론, 법, 그리고 회유를 통한 공격을 벼텨내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적을 설정해서 사회의 공포감을 일으키는 것은 여러 사건을 통해서 충분히 보셨을 것 같습니다. 집단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것도 힘들다면 어떤 사람 또는 집단을 희생물로 삼아서 내부 또는 외부의 적을 만듭니다. 이들의 위협이 우리의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필요 이상의 통제를 합리화시킵니다. 정보가 통제되어 있으니 쉽게 적을 만들고 또한 적이 위협하고 있으니 정보를 쉽게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의 비극적인 결과는 동물농장의 한 부분이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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